5늘의 나

250325_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가

백첨지 2025. 3. 26. 06:27

오늘도 작하!

오늘도 '인생여전'하다. 특히 더 '안녕'하지 못하다.

거센 바람에 우리동네 건설현장에 타워 크레인이 쓰러졌다.
꿈자리도 사납고 학교 가기 전 속이 뒤집어질 듯 했다.
오후에는 학교를 가야 하는데 학교 가기가 왠지 싫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못와도 되지만 못오면 서운할 것 같다는 그 한마디와 논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학교에 나갔다.

학교는 가는 길에도 트럭을 타고 가는데 차선이 바뀔 것 같이 움직였고 운전하는 내내 불안했다.
수업시간 내내 집중은 안되고 창밖을 보며 우는 듯한 창문 소리에만 귀기울이고 있었다.
온 신경이 그뿐이니 피곤하기만 하다. 농장에 들려 확인하고 갈까 했지만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던 중 동네이웃이 메세지가 왔다.
'사장님 하우스가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온갖 바람에 시달리다 사정없이 찢어진 비닐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진다.
지난 12월에 큰 돈 주고 갈았던 하우스인데 재생불가 상태도 보인다.
안그래도 허리띠를 조이고, 그럼에도 목전까지 왔는데 이제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오후 내 있었던 두통은 더 심해지고 손발이 떨렸다. 운전도 못하겠는데 빨리 가서 확인해야 하는 집념으로 무조건 달렸다.
농장에 가면서 함께 하는 대표님께 연락을 했다.
'알겠어 갈게' 라는 말 한마디에 공주에서 달려오셨다.
요즘 안동으로 현장 가시는데 산불로 고속도로가 막혀 우회하여 4시간씩 현장을 트럭타고 다니시는데 퇴근하자마자 농장으로 달려오신 대표님.
오자마자 웃으며 그러신다.
'세상에 쉬운 것 하나 없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지?'
그러면서 눈물 나기 전 웃음부터 나게 하신다.
그리고 비닐하우스를 확인하고 업자에게 전화해 '왜 우리집만 비닐이 날라가는겨!' 라고 말했더니
그쪽도 화원하시는데 4개동 하우스가 날라가서 수리중이라고 하신다.
'급하니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며 전화를 끊으시고
나와 마주보고 웃으며 '자기것도 4개나 날라갔다는 데 할 말이 없다 ㅋㅋ' 며 마무리 지었다.
커피 한잔을 나누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쉬운 일이야 걱정하지마 그냥 잊어'라는 말과 함께 대표님은 떠나셨다.

그래도 가슴 아픈 건 사실이다. 작년으로 모든 불행은 끝났다 싶었는데 올해는 사고가 너무 많다. 계속 위기가 찾아온다. 예전 같으면 일이 터지자마자 어머니를 찾았겠는데 어머니를 그만 괴롭히고 싶었다.
내 존재 자체로 어머니의 만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모든 일이 죽어야 끝난다'라는 말처럼 역시나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긴다.

밤 9시가 넘어서야 깜깜해져 보이지 않을 때 현장을 벗어나 집에서 밥 한끼 먹고 그대로 잤다.
새벽에 막다른 골목으로 계속 쫓기는 꿈을 꿨더니 너무 지친다. 새벽 3시가 안되어 잠에서 깨.. 오늘 하루도 길 것 같아 다시 잠들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결국 4시에 씻고 나왔다.

날이 밝지 않아도 처참한 현장은 보이고
사장님을 기다려본다.
그러며 다시 꺼낸 현장 사진에 자세히 보니 이제서야 보인다. 우리 유월이의 불안한 모습이.

어제도 음주운전 의심 차량으로 사고날 뻔했었는데 동생이 운이 나뻐 사고날뻔 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져 사고가 안난 거라 했다.
그게 떠올랐다. 학교 가기 싫어 안갔다면 하우스가 날라가는 모습을 보며 분명 하우스 천장으로 올라가 비닐을 잡으려 애썼을 것이다.
하우스 사장님한테 어제 전화해 하우스 비닐좀 잡아두면 안되냐고 했더니 지금 올라가면 바로 바람에 떨어져 사고 난다고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마 나라면 돈이 뭐라고, 비닐이 뭐라고 조금이라도 살릴려고 붙들고 있었을텐데 어쩌면 동생 말처럼 다행일 지도 모른다.

하루에서 수백번 바뀌는 내 마음에 정신이 없다.
당연한 것이라 하고 그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아직도 이 고행이 두렵다.

그래도 유월이를 보며 미안하다.
'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안타까웠을까... 그리고 짖어서 이웃이 알게 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