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작하!
외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
연세가 있으니 당연한 것인데 받아드리가 힘든 만큼 내게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소중한 사람과 더 소중한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추고도 몇개를 더 울리게 했다.
실수할까봐, 병원을 못 갈까봐 걱정하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준비하여 5시 좀 넘어 고향으로 가며 왠지 슬펐다. 하루가 길 것 같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대전으로 출발했다. 출발은 무난했다. 웃으며 이야기하며 병원을 향했다. 아마 병원 진료 전 서로 갖고 있는 마음의 무게와 서로 아닌 척 하기 위해 더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병원에 들어서니 살짝 긴장이 되고 진료를 시작했고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 조금만 친절했으면 좋겠는데 의사가 껄렁하고 간호사들의 특유의 차디찬 얼굴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들의 직업적 특성이겠지, 다 나 같으면 무조건 방전되겠지라며 위안을 삼았다.
진료를 기다리며, 검사를 기다리며 우리 셋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삼대가 앉아있고 환자는 우리 외할아버지이신데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신다. 외할아버지가 걱정되시겠지만 걱정의 마음이 나에게도 향해 있다. 검사를 진행하며 여러 이야기 시지만 내 걱정이 가득함이 느껴진다. 그 속은 들어가보지 않았지만 나라면 혼내고 싶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또 다독이고 위로하고 사랑해주신다. 비뚫어진 아들의 마음에 가시 돋는 말과 행동에도 안아 주신다.
그게 지금까지도 눈물이 나는 이유이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그저 숨기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는 멍청한 아들이
마치 군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에게 속마음이 흘러나와 '저 군대 안가면 안돼요'라고 물어 어머니 마음을 휘저어놨던 것처럼 이제와 사실 어머니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말하고 싶었다.
이 나이에 진짜 할 말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나선 기억이 잘 안난다. 그냥 그때부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모시고 가고 할아버지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 집으로 왔다.
긴장이 풀렸는 지, 피곤했는 지 어제 저녁에는 완전 뻗었다.
셋이 운전하며 가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냐고 했을 때 '외할아버지와 같이 살 때'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지금까지 고생하는 이 시기보다 어릴 적 아버지와 살았던 그 마음이 최고의 순간이신가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곁에서 커 온 순간은 잊혀지지 않고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누가 선풍기바람도 건강에 안좋다고 부채로 키우며 외손주를 이리 사랑으로 키우겠는가.
그 바쁘시지만 늘 데리고 다니며 부족한 나를 채워주시며 살았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감사하고 죄송하다.
어머니에게는 더 그렇다. 해드린 것 없이 받기만 해야 하는 내가.... 어떻게 해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겁도 많고 하고 싶은 것보다 하기 싫은 것이 더 많은 내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다.
나는 어느 높이에서라도 떨어져도 안전하게 받아주실 그물 같은 존재이고, 너무나 촘촘하고 넓어서 오히려 그물 밖에 안보이는 존재이다.
그런 그물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래서 바보 같이 살았던 것 같다. 그 그물이 닳고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병원에서 확인 시켜줬다.
인정해야 하지만 아직도 눈물만 펑펑 흘리는 바보다.
언제쯤 어른이 되려나 큰일이다.
그물이 되어 줄 나이에 아직도 그물을 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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